[스크랩] 진보적 자유주의
진보적 자유주의가 잿더미 속에서 불사조처럼 다시 출현하였다. 옛 진보주의자들은 사회에서 일어나는 흥미진진한 추세에 대해 혐의점만을 찾고자 하는 정통주의의 태도에 이젠 싫증이 났다. 그러나 정치적 맑스주의처럼 자유주의는 교회에서의 영적인 필요들에 대해 해답을 거의 제공할 수 없었으며, 복음이 하나의 연합된 지구에 대한 전세계적인 기대감에 부응할 수 있다는 것을 제시하지 못했다.
기성교회가 그들이 주장하고 제시하는 평화와 정의에 대한 사회적 협약(agenda)만을 제공했을 뿐 어떠한 영적인 능력도 보여 주지 못했다. 기성교회들은 충성을 명령할 수 있을 정도로 기독교 신앙을 가르칠 정도의 의지나 능력을 잃어버렸으며 그로인해 세속적인 것에 대해서나 비 기독교적인 종교적 체계들과는 전투에서 패배하게 되었던 것이다.
진보주의자들이 진보적 현대주의에 대해서 가장 과격한 비판자들이 되었다. 인간의 문제들을 해결함에 있어 인간 이성의 힘을 믿던 확신은 유혈의 잔인함으로 악명 높은 수증기처럼 증발해 버린 것이다. 세속적 인본주의의 붕괴로 인해 그것의 4가지 영적 법칙들을 폐지할 수 밖에 없었다. 1) 생물학적인 진화론 2) 실존주의 3)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4) 마르크스주의 들이다.
세속적 인본주의의 붕괴가 정통 기독교에 대해서나 사회에 대해서 반드시 좋은 소식이라고는 할 수 없다. 자유주의는 지금 이교적 영성이라는 망토를 걸치고 나타났다. 정교분리의 잘못된 잘못 이해된 교리가 기독교를 마비시켜 버렸다.
사신신학으로 '신은 죽었다'고 외쳤던 무신론적 신학자였던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는 인간의 자유의 새로운 시대를 위한 선지자가 되었다. 루터교회의 목사의 아들인 니체는 진정한 인간의 진보는 한 '초인'의 탄생으로 귀결될 것이라고 믿었는데, 그 초인은 약골들의 신앙인 기독교를 버리고 '강하고' 자율적인 개인들을 위한 총체적 자유의 도덕률을 채택한 것이다. 니체는 기독교의 낮아짐과 유약함과 자기 희생의 덕목을 멸시하며 '가치의 재평가'를 주창하였는데, 이는 도덕적 가치들을 완전히 거꾸로 뒤집어서 악을 선으로, 선을 악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유신론의 최상의 형태는 일신교가 아닌 다신교였다. 그의 낙태 선택의 윤리와 종교적 복수주의로 특정지어지는 우리 시대에 대한 섬뜩한 예언처럼 울리고 있다.
비록 니체는 미친 상태에서 그의 여동생의 팔에 안긴 채 죽었지만, 그의 사신신학은 미래에 대하여 다신교의 부활, 즉 신들과 여신들의 부활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 밝고도 새로운 미래란 동양과 서양의 현대적 만남으로 부터 올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인간 의식의 변형을 일으켜서 결국 새로운 지구적 의식를 창출해낼 것이라고 믿고 있다.
정통주의 신학자들이 독일의 회의주의적 합리주의라는 추운 전선에서 칸트, 불트만 등과 싸우는 동안, 적의 진영은 따뜻하고 영적이며 비합리주의적인 신비주의라는 옷으로 갈아입었다. 미래는 니체, 칼 융, 조셉 캠벨 등과 같은 주변인들에게 속할 것이다. 이제 소규모의 국지전은 대규모 전투로 번졌으며, 정통주의는 유신론적,무신론적 경계의 자기 진영에서 신비적이고, 이교적인 다신교의 위협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자유주의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그것은 정통주의가 특정한 위협을 가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자유주의 진영 내에서 영적인 부흥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희망이 부풀어있다. 고대의 이교주의적인 영지주의 텍스트들이 신학적으로 소생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의 회의주의자들, 교회의 이탈자들, 그리고 혼란스러워하는 교회의 구성원들이 뉴에이지라고 하는 곳에서 종교를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자유신학은 종종 사회 운동을 흉내를 낸다. 영지주의의 다양성은 새로운 형식들과 자유로운 표현을 위하여 사회적, 종교적 연구를 반영한다. 영지주의가 기독교화하기 이전에는 그것은 모든 이에게 자유를 약속하는 하나의 사회적 해방 운동이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리고 기독교적 영지주의는 기독교인 불만세력들이 그들의 신앙을 해방운동과 일치시켜 재해석하려는 하나의 시도였다. 이보다 더 자유적이며 기독교적인 것이 어디에 있을 것인가? 현대의 해방운동, 전통적 도덕에 대한 거부, 현대의 개방적인 성의식, 영적 거듭남과 정상 도달에 대한 뉴에이지의 약속, 동양적 수행, 여신 숭배, 그리고 이러한 시대의 정신이 교회로 점차 침투하는 것 등에서 역사는 재현되고 있다.
진보적인 자유주의는 이교의 신앙과 수행들을 기독교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정당화하고 있다. 오늘날 기독교 신학자들도 고대의 영지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교회가 이교적 종교들에서 우주적 신비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고대의 영지주의가 초대 기독교의 대안적이고 진정한 한 형태라고 주장한다.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