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영성의 훈련과 회복
기독교 영성의 훈련과 회복
딤전 4 : 1 - 8절
1. 서론
미국의 철학가이자 미래학자인 「트루블러드」(D. Elton Trueblood)는 ‘오늘의 문명은 뿌리가 잘라진 꽃과 같은 문명’이라고 진단을 내렸습니다. 이것은 인류가 오랜 세월을 두고 과학의 발달과 경제의 성장을 이루어왔지만 그 이면에는 자연환경의 파괴와 물신주의로 인해 인간의 질적인 삶이 고갈되었음을 갈파한 것입니다.
본 뿌리에서 잘려 화병에 꽂혀진 꽃은 언뜻 보기에는 아름답고 찬란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머지않아 시들어져 쓰레기로 버려지고 맙니다. 마찬가지로, 첨단을 달리고 있는 현대의 문명이 겉으로 보기에는 행복을 가져다 줄 것 같지만 종래에는 파멸을 가져오고 만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사회는 높은 교육수준과 생활수준을 지닌 문명사회로 발전해 왔지만 많은 사람들은 도덕성의 타락과 인간성의 상실 속에서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지 못하고 공허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찾지 않고 물질만 숭배하는 인간의 삶은 본 뿌리에서 잘려져 화병에 꽂힌 꽃처럼 한때는 화려한 것 같으나 결국은 쓰레기로 버려지는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때문에, 가치 있고 영속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영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2. 영성이란 무엇인가?
그러면 영성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영성을 회복할 수 있겠습니까?
‘영성’(靈性)이라는 용어는 영어 ‘spirituality’를 번역한 말인데, 이 용어는 기독교에서만 독점적으로 사용하는 특별용어가 아닙니다. 영성은 인간이면 누구나 지닐 수 있는 본질적인 특성이자 성스러운 일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타종교에서도 그 종교만의 영성이 있습니다. 예컨대 불교의 승려인 원효대사나 힌두교의 성자인 마하트마 간디에게서도 영성이 있는데 이들의 영성은 불교인의 영성, 힌두교인의 영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영성이 타종교에서도 나타날 수 있는 것이라고 본다면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지녀야 할 영성은 ‘기독교적 영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강의에서는 기독교적 영성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영성에 대한 정의는 매우 다양해서 한 마디로 정의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메코믹 신학교의 교수인 「노만 샤우척」(Norman Schawchuck)은 ‘기독교 영성은 신적 영광을 포기하고 낮고 천한 사람이 되신 예수님과의 영적 교제와 그 교제를 통해 경험하는 삶의 변화’라고 정의합니다. 이 영성은 하나님께서 낮은 자리로 찾아와 인간과 만나주심으로 가능한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의 교수인 「존 맥쿼리」(John Macquarrie)는 ‘인간의 자기 초월의 영과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오는 성령과의 만남을 통해서 인간의 자아가 변화되어 그리스도를 따라 사는 삶이 영성’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영을 분배받는 까닭에 자아를 초월하는 역동성을 지니고 있는데 이 인간의 영이 하나님의 영과 만남으로써 삶의 변화를 체험하게 되는 것이 기독교 영성이라는 것입니다.
또 장신대에서 실천신학을 강의하고 있는 「오성춘」 교수는 ‘기독교 영성은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요, 그리스도와의 관계의 삶이며, 성령의 능력으로 사는 삶’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의 모든 삶에 흘러 넘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며, 하나님의 생명의 삶에 자신을 참여시키는 삶이 곧 영성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영성에 대한 정의는 신학자에 따라 다양하게 내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성에 대한 다양한 정의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한 가지 공통점은 ‘영성은 곧 삶의 변화를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세속적이고 이기적이며 죄에 물든 인간이 성삼위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변화되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 기독교적 영성의 중요한 특질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성회복이란 죄로 인해 잃어버린 하나님의 거룩한 형상을 회복하고 성령의 감화로 변하여 새사람이 되어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는(엡4:13절)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영성회복의 필요성
오늘날 우리는 영성회복이 매우 필요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 시대의 현실과도 무관하지 않은데, 영성회복의 필요성을 몇 가지 든다면 이렇습니다.
(1) 지나친 물신주의(物神主義)
그 동안 한국사회에서 급속히 진행된 산업화와 도시화는 물질을 우상으로 숭배하는 풍토를 낳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존엄성이나 도덕, 윤리 등은 상대적으로 그 위치를 잃어가게 되었는데, 예수님은 이러한 현상에 대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6:24절)
그러므로 물신주의는 신앙의 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물질을 우상으로 숭배하는 황금만능주의의 사회에서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기 위해서는 영성의 회복이 시급히 요청되는 것입니다.
(2) 타락하고 죄로 가득한 세상 풍조
영성회복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도덕적, 윤리적으로 무척 타락했고 또 온 땅에 죄악이 관영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필요합니다.
※ 지난 1999년 10월 13일에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소속인 「김광원」 국회의원이 경찰청 국정감사에서 밝힌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는 18초에 1건씩 범죄가 발생하며 이 가운데 살인사건은 9시간 5분마다, 강도사건은 1시간 35분마다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이것은 이 사회가 얼마나 타락했고 얼마나 죄악이 관영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구체적인 통계에 다름 아닙니다.
이 사회에는 이러한 형법적인 죄뿐 아니라 도덕과 윤리의 타락, 인간성의 상실, 인터넷을 통한 음란물의 범람, 동성연애 등등‧‧‧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증스러운 일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세상 풍조 속에서 자신을 지키고 거룩하고 성결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영성의 회복이 무엇보다 필요한 것입니다.
(3) 불건전한 신비주의
‘신비주의’는 신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경험하는 것, 즉 ‘신과 인간 영혼의 연합에 대한 신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이론’을 의미하며 체험을 무척 중요시한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교리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기독교는 신비한 면을 많이 지니고 있기에 신비주의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한국 기독교에서 문제시되고 있는 신비주의는 하나님과의 합일과 사랑의 완성을 추구하는 신비주의가 아니라 자신의 이기적인 욕심과 개인성을 추구하는 신비주의입니다. 이러한 신비주의는 지극히 현실 도피적이고 초월적이며 현재의 충실한 삶을 외면하기 때문에 이 사회에 심각한 폐해를 끼치고 있습니다. 한국 기독교의 많은 이단 종파들 사이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러한 현실 도피적인 신비주의입니다.
그러므로 이 종말의 시대에서 이단 종파들의 사이비 영성에 대항하여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참된 영성의 회복이 요구됩니다.
4. 기독교 영성의 특징
앞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모든 종교에는 그 나름대로의 영성이 있습니다. 그러면 기독교 영성이 가지고 있는 특징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많은 것이 있겠지만 중요한 특징을 몇 가지 든다면 다음과 같이 네 가지를 열거할 수 있습니다.
(1) 하나님 중심의 영성
기독교는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하나님께로 귀결되는 것을 믿습니다.(사48:12,롬11:36,계21:6절) 그러므로 기독교 영성은 무엇보다 ‘하나님 중심’이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님 중심’이란 오직 하나님만이 절대자와 주권자가 되시며, 그 외의 모든 것은 결코 인간의 경배와 찬양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신앙고백입니다. 하나님 중심의 영성은 철저하게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을 드높임으로써 인간은 삶의 행복과 자기 완성을 체험할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2) 말씀의 영성
‘말씀의 영성’이란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성경과 강단 설교에 한정된 좁은 의미의 영성이 아니라 더 크고 근원적인 영성입니다.
‘말씀의 영성’이란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하여 자신의 뜻을 계시하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태초부터 계신 말씀이었고(요1:1절),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이었으며(요1:14절), 성령은 오늘날 성도들의 심령 속에서 말씀하시는 분입니다.(요14:26절)
우리 한국교회가 기독교 전래 이래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급성장을 했던 것은 바로 말씀 중심의 신앙 때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선교사보다 성경이 먼저 들어왔다는 독특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그 성경도 외국어 성경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이 번역한 우리말 성경입니다. 우리나라는 1885년에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로 입국했지만 그보다 3년 앞서 「서상륜」과 「이응찬」에 의해 최초의 우리말 성경인 ?존 로스역?이 간행되었습니다.
이뿐 아니라 개신교 전래 초기부터 예수님을 믿기로 한 사람들은 성경을 열심히 읽었고 성경의 말씀을 따라 살려고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감리교 선교사인 「존스」는 초기 한국교회의 신앙유형을 열 가지로 분류했는데 그 중에 첫 번째로 꼽았던 것이 바로 ‘성경의 압도적 권위에 대한 흔들림이 없는 신앙’이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말씀 중심의 신앙이 한국 개신교가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급성장을 이룬 원동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회복해야 할 영성은 바로 이러한 말씀의 영성입니다. 이 말씀의 영성이 우리의 삶과 신앙을 변화시키고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3) 십자가의 영성
십자가는 원래 가장 흉악한 죄수를 사형시키는 형벌의 도구였지만 예수님의 구속사역을 통하여 기독교 구원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십자가의 영성’이란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세상의 사단적 힘과 지배가 패배하고, 진리와 사랑이 승리하였다는 것을 믿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십자가가 의미하는 대속적 사랑, 타인을 위한 자기희생, 죄의 회개,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 등을 자신의 삶 속에서 재현하면서 살겠다는 결단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십자가는 구원의 능력이요 복음의 핵심이며 승리의 표징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한 예수님이 승리자’라는 것이 복음의 요체입니다. 십자가의 정신이 모든 것을 이겼으며, 또 이길 것이라는 신념이 바로 십자가의 영성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십자가의 영성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회복해야 할 영성인 것입니다.
(4) 순례자의 영성
우리 기독교의 순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가다가 종국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여정입니다.
따라서 ‘순례자의 영성’은 이 땅에서 예수님의 사랑과 희생을 실천하면서 살다가 나중에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며 살아가게 될 것을 믿는 소망의 영성입니다. 이러한 순례자의 영성을 가진 사람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으며, 그렇다고 현실로부터 도피하지도 않습니다. 도리어 현재의 삶에 충실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살아갑니다. 이 종말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이러한 순례자의 영성을 회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5. 영성회복의 방법
영성을 회복하기 위한 영성훈련의 방법은 아주 다양하며, 그 종류도 무척 많은데, 기독교 영성의 역사를 살펴보면 영성훈련에는 ① 내적 훈련, ② 외적 훈련, ③ 공동체 훈련이란 세 가지 양식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본 강의에서는 이 세 가지 양식을 중심으로 영성훈련의 방법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내적 훈련
내적 훈련이란 하나님과 나만의 시간을 만들고 하나님 앞에 홀로 서서 하나님을 기다리며 앙망하는 훈련입니다. 여기에는 ① 묵상훈련, ② 침묵훈련, ③ 기도훈련, ④ 금식훈련 등이 있습니다.
① 묵상훈련
묵상훈련은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의 삶을 성찰하며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조용히 생각하는 훈련입니다.
이 묵상훈련에는 성경을 읽고 명상하는 과정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자신의 뜻을 계시하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묵상할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깊은 교제에 들어가며, 하나님의 영광스런 임재를 경험하며,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동행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② 침묵훈련
침묵훈련은 말을 삼가 함으로써 영혼을 고요하게 하여 내면적 성찰의 시간을 갖는 훈련입니다.
사실 인간은 일상생활 속에서 끊임없이 대화하며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침묵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침묵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고 영적인 힘을 얻게 하는 수단이 됩니다. 침묵의 영성훈련이 깊어지면 외부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조절하는 능력이 생기며, 더 이상 외부의 소리와 정보가 내면적 영혼의 세계를 방해하지 못하게 합니다.
③ 기도훈련
기독교 전통에서 기도는 매우 중요한 영성훈련의 방법입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요 하나님과의 대화이며 하나님의 능력을 공급받는 통로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건강하고 능력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기도훈련이 대단히 필요합니다.
기도의 방식에는 통성기도, 묵상(침묵)기도, 관상(觀想)기도, 금식기도, 중보기도, 서원기도, 작정기도, 철야기도 등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요 허락 받은 은총의 선물이기 때문에 기도할 때는 중언부언하지 말고, 미사여구로 치장하지 말고, 솔직하고 간절하게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④ 금식훈련
금식은 자신의 죄를 참회하고, 중보기도의 효력을 증대시키고, 육체를 쳐서 복종시키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 「존 칼빈」은 ‘금식은 육체를 굴복시켜 기도와 거룩한 묵상을 더 잘 준비하고 하나님 앞에서 겸비(겸손)해지기 위해 행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신실한 신앙인들은 금식의 사람들이었으며 금식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그러나 금식을 문제 해결의 만능 열쇠로 오해하여 금식만 하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 줄로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또 준비 부족이나 금식 후의 음식 조절 실패로 건강을 잃을 수도 있고 금식 후 영적으로 교만해져서 영성이 더 악화될 수도 있으므로 금식훈련을 할 때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2) 외적 훈련
외적 훈련은 나 혼자만의 훈련을 넘어서서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고자 하는 훈련입니다. 이러한 외적 훈련에는 ① 단순훈련, ② 고독훈련, ③ 순종훈련, ④ 섬김훈련 등이 있습니다.
① 단순훈련
단순훈련은 ‘성경이 말씀하시는 대로 모든 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것을 단순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말하는데,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해야 할 단순성은 ‘소유 중심의 삶에서 존재 중심의 삶으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현대인은 내면성의 복잡함으로 인해서 외적 생활양태도 매우 복잡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단순성이야말로 참으로 자유케 하는 것이며 우리의 삶에 기쁨과 안정을 가져옵니다. 이 단순화 훈련은 물량주의에 병들어 가고 있는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참으로 필요한 훈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② 고독훈련
사람들은 외로움을 두려워하여 소음과 군중 속에 휩쓸리고 있습니다. 고립이 내적인 공허라면 고독은 내적인 충만이라고 할 수 있는 바 영성훈련이 지향하는 바는 바로 이 고독에 있습니다.
즉 고독훈련은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듣는 훈련입니다. 고독훈련의 목적은 개인주의적이고 외톨이적인 삶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르고 생명력이 있는 말을 하고, 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서 꼭 필요한 참여적 삶을 살기 위한 데 있습니다. 인간은 이 고독훈련을 통하여 고독과 공포에서 자유하게 되며, 고독 안에서 하나님의 침묵을 체험하게 되며, 참된 내적인 침묵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③ 순종훈련
순종에 대한 영성적 내용은 예수님께서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을 것이니라.”(눅9:23절)고 하신 말씀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예수님이 하신 자기 부정은 자기 경멸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양보입니다. 예수님은 일생을 섬김과 순종의 삶으로 사셨는데 예수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삶은 바로 자발적인 순종의 삶이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닮으려면 예수님의 이러한 순종을 훈련해야 하는 것입니다.
④ 섬김훈련
섬김훈련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종이 되어 그들을 섬기는 봉사훈련입니다.
예수님은 ‘누가 높으냐’고 다투는 제자들을 불러 놓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막10:43절)고 하시면서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함’(막10:45절)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고자 한다면 섬김훈련이 필요합니다.
(3) 공동체 훈련
공동체 훈련은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모여 주의 이름으로 실행하는 훈련을 말합니다. 이러한 공동체 훈련에는 ① 고백훈련, ② 예배훈련, ③ 인도훈련, ④ 경축훈련 등이 있습니다.
① 고백훈련
고백훈련은 공동체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훈련입니다. 고백은 우리를 변화시키는 본체이며 십자가는 그 고백을 참된 회개와 변화가 되도록 보증하는 능력입니다. 그래서 독일의 위대한 신학자 「본 훼퍼」는 “형제 앞에서 죄를 고백하는 사람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그는 다른 사람의 실체 안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한다. 내 죄를 혼자서만 고백하면 모든 것은 어둠 속에 남아 있지만 형제 앞에서 고백한다면 그 죄는 빛으로 옮겨지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고백훈련은 공동체 속에서 죄 문제를 확실하게 끊을 수 있는 방법인 것입니다.
② 예배훈련
예배는 하나님께서 임재하여 역사하시는 중요한 장이며, 하나님의 현존 안으로 침투하는 일인 동시에 하나님의 현존에 의해 침투 당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면 우리의 중심에는 거룩한 불이 붙게 되며 현존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이 예배는 다른 것보다 우선시해야 합니다. 예배가 먼저요 섬김은 나중이며, 섬김이나 활동은 이 예배로부터 흘러나와야 합니다.
③ 인도훈련
‘인도’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인도훈련이란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될 때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선택하도록 도와주는 훈련’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인도훈련이 공동체 훈련의 하나가 된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신 역사적 경험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18:20절)고 말씀하심으로써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공동체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보다 더 잘 분별할 수 있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④ 경축훈련
기독교는 축제의 종교입니다. 예수님의 탄생과 부활을 축하하고, 성령 강림을 축하하며, 하나님이 베푸신 구원의 은혜를 감사와 기쁨으로 경축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경축을 가져다 주셨으며, 이 경축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인 것입니다.
경축이 없는 신앙은 활력과 기쁨을 잃어버린 신앙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삶을 위해 부름 받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기쁨은 곧 성령의 열매요(갈5:22절),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구원의 선물입니다.(요15:11절)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감사와 기쁨으로 축제의 예배를 드리며 축제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6. 결론
‘기독교적 영성’이란 유일하신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기반으로 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내 속에 구체화시키고 성령의 능력으로 새롭게 변화되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즉 ‘영성’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삶 속에서 만나는 것이며, 수직적인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수평적인 이웃에의 사랑을 몸으로 실천하는 삶의 과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성을 회복한 사람은 반드시 삶의 변화가 나타나게 되어 있는데, 우리가 이러한 영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부단한 훈련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디모데전서 4장 7절에서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고 권면했습니다.
지금까지의 말씀에서 소개한 여러 가지 영성훈련을 삶 속에서 적극적으로 실천하여, 죄로 인해 잃어버린 하나님의 거룩한 형상을 회복하고 삶과 신앙이 변화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아 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