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과 생활의 동시적 구원주체로서 바람직한 교회의 역할
영혼과 생활의 동시적 구원주체로서 바람직한 교회의 역할
남상도 목사(한마음공동체)
1. 백운교회 이야기
본인은 전라남도 신안군 임자면에서 1957년 6월 11일에 출생하여 3세때 목포로 이사한 후 군 입대 전까지 줄곳 그곳에서 자라났고, 고등학교 1학년때 친구의 전도로 교회를 나가게 되어 신앙생활을 접하게 되었다. 그 당시 다니던 교회는 구세군 교회였으나 실제적인 신앙의 영향은 C.C.C활동을 통해 받게 디었고 상당히 광신적(?)열성신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하라는 공부는 뒤로하고 오직 전도와 기도만이 생활의 전부였고 학교에 가는 이유도 전도하기 위함이었다. 이런 이유로 담임선생님이 여러 차례 집으로 찾아와 종교문제로 상담을 해왔으며 부모님들도 하숙생 아들을 두었다는 표현을 할 정도로 거의 모든 시간을 교회에서 보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군 제대 후 81년 3월 광주에 있는 장로회 호남신학교(예장통합)에 입학하여 신학공부를 하게 되었다. 당시의 지역적 상황과 주위 환경은 본인으로 하여금 정치 사회적 눈을 뜨게 하였으나 근본적으로는 이기적 보수주의 신앙의 테두리 안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신학교 4학년 때 백운교회에 부임하였다. 상당수의 목회자가 그렇듯이 본인 역시 농촌교회는 잠시 거쳐가는 정류장으로 생각했을 뿐 (아무리 그렇지 않다고 부인해도 결과는 ....) 이곳 농촌에서 뼈를 묻을 생각은 해보지 않았었다. 도시의 큰 교회에서 목회자의 꿈을 마음껏 펼치겠다는 이기적 목회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러한 본인이 농촌, 농업, 농민의 삶 속에서 전에는 접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신학에 눈뜨기 시작하면서 가난한 농촌지역의 삶 속에서 진정한 하나님의 부름에 응답하고 결단하며 농민 민중 속으로 들어가 그들과 함께 하는 목회자로 변신해 갈 수 있었다. "기독교는 종교가 아닌 삶이다. 다만 삶 속의 한 부분에 종교가 있을 뿐이다." 요즈음 본인은 이 표현을 자주 쓰고 있다.
본인의 목회관에 변화를 가져오게 한 것은 신학 강의실이나 서적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농촌의 삶의 현장이었다. 물론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였겠지만 가장 강하게 영향을 주었던 세 가지 일들을 정리해보면, 첫번째는 배추농사 사건이었다. 논두렁 밭두렁을 타고 다니며 땀흘려 일하고 있는 농민들의 배추밭으로 심방을 가서 흙 묻은 손목들을 부여잡고 간절한 기도를 드린다. "하나님! 이렇게 땀흘려 고생하는 농민들의 배추농사가 잘되어 축복이 넘치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가을이 되어 수확을 할 때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길러진 크고 탐스러운 배추포기를 한아름 안고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농사가 잘된 것이 축복인 줄 알았는데 그것은 엄청난 저주로 바뀌고 만 것이었다. 아름드리 배추 한 포기에 껌 한 개 값도 되지 않는 것은 물론 채 팔리지도 않아 밭에서 차가운 눈발에 썩어 가는 모습은 결코 축복이 아닌 저주였다. 비단 배추만이 아니라 고추, 마늘, 양파, 소, 돼지 등 모든 농축산물들이 하나님의 축복가운데 잘되면 저주로 변하고 마는 것이었다. 과잉생산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모순, 수입농산물 등 잘못된 농정에 의해 하나님의 축복은 저주로 변하는 것이 농촌의 현실이었다. 이와 같은 처참한 농촌의 상황을 직시하면서 이제 손 얹고 말로만 하는 축복기도를 그만두고, 잘못된 구조적 모순과 싸워 축복을 더 이상 빼앗기지 않고 농민의 품에 돌아가도록 해야 하는 것이 진정한 축복권의 의미임을 깨닫고 몸으로 실천하는 기도의 목회를 하게 되었다.
두 번째는, 설교 시간에 받은 충격이었다. 교회학교 예배 설교시간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어린이들에게 해보았다. "세상에는 많은 직업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양심적이고, 땀을 많이 흘리고, 성실한 직업, 즉 하나님이 권장하실 만한 직업이 있다면 어떤 직업이겠는가?" 어린이들은 이것저것 생각하다가 마침내 '농업'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면 너희들 중에서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직업인 농업을 선택할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고 했을때 놀랍게도 단 한명의 어린이도 손을 들지 않았다. 똑같은 질문을 장년예배 때에도 해보았지만 자녀들에게 농사를 물려주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왜? 무엇때문에 신성한 직업, 농업을 거부하는가? 그것은 개인적 윤리적 책임이라기 보다는 잘못된 사회가 그렇게 만들어 버렸음을 깨달았다.땀흘려 노력하며 양심적인 작업을 가진 사람은 비참한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사회, 가장 귀한 농업노동이 천대받는 이 사회야말로 사탄이 지배하는 사회임을 절감하고 묵은땅을 갈아엎는 심정으로 사회개혁운동을 전개하는 것이 목회자의 시대적 사명임을 깨닫고 실천에 옮기게 된 것이다.
세번째는 성서묵상을 하는 중에 깨달은 사실이었다. 예수와 그 당시의 종교가(율법학자, 제사장, 바리새인 등)들과는 공통된 점이 있는가 하면 극과 극을 걷는 상반된 점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공통점은 예수도 종교가들도 구약성서를 가지고 민중들에게 말씀을 가르쳤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혀 다른점은 그 당시 종교가들은 말씀 선포가 끝남과 동시에 그 말씀을 들었던 민중들과는 철저히 격리된 생활을 하며 성전 계급들끼리만 어울렸던 반면에 예수는 말씀을 들은 민중들과 똑같이 먹고 마시며 함께 생활을 하였다는 것이다. 그러한 깨달음이 있은 후에 본인의 목회생활을 반성해보니 영락없이 그 종교가들의 생활과 똑같았음을 알 수 있었다. 일주일 동안에 설교는 많이 하지만 과연 농민들과의 생활은 얼마나 하고 있었는가 ? 예수의 가르침을 따른다고 하면서도 실은 율법학자들과 중세의 타락한 교권주의자들의 뒤를 따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목회자로서의 모든 허위의식을 헐어버리고 농민들의 생활속으로 뛰어들어가 그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복음을 전하는 것이 바른 길임을 깨달은 것이다.
이와같은 목회자의 변화가 생기면서 동시에 교회에도 변화가 나타나게 되었다. 교회 역시 기존의 이기적인 모든 담을 헐어버리고 지역 농촌, 농민, 농업의 문제들을 가슴으로 안고 지역 농민들과 하나가 되어 구체적으로 일하게 되었다.(구체적 사례는 마지막 부분의 6가지 운동으로 정리함) 교회가 지역 농민문제에 구체적으로 뛰어들자 여러가지 변화들이 나타나게 되었는데 그동안 교회와 거리감이 있던 지역 농민들도 전혀 부담을 느끼지 않은 채 교회를 출입하면서 당면문제들을 풀어갈 수 있었다.
그 후 교회 건물을 새로 건축(1988년)하는데 전 지역 농민들이 종교를 초월하여 협력을 해주었다. 기초 공사에서부터 교회건축이 끝날 때까지 수백명의 지역농민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어 어려운 일들을 함께 해주었다. 어떤 이들은 노동력을 제공하고, 또 어떤 이는 쌀과 반찬을 가져오고, 돈을 가져오고 마치 시골장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많은 인원이 동원되어 즐거움 속에서 교회건축을 마칠 수 있었다. 그리하여 교회의 머릿돌에는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다. "이 교회는 지역 농민들의 협조로 지어진 교회입니다" 이처럼 농민들의 뜨거운 협조로 지어진 교회는 지역 농민들을 위하여 다양한 계획 속에 운동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
백운교회는 장성군 남면 마령리에 소재하고 있으며 선교 대상의 농민은 약 400세대, 1,200여 명이고 주로 벼농사를 하고 있는 반농지역이다. 대다수 농민들은 평균 연령이 50세를 웃돌고 있는 전형적인 오늘의 한국 농촌의 모습을 갖고 있다. 교회는 1960년대에 설립되었고 교단 소속은 대한예수교 장로회(통합)광주노회이며 현재 장년 80여명, 청년 10여명, 중고등부 10여명, 아동부 30여명의 인원이 모이고 있다.
2007년도 1년 예산은 약 8,000만원이고, 장로 5명 권사 12명 안수집사 7명 서리집사 29명이며 남상도 목사는 84년 3월 1일에 부임하여 2004년 6월까지 만 20년을 목회한 후 사임한 상태이고, 현재는 후배 목사인 백명기 목사가 목회를 하고 있다.
백운교회가 행하고 있는 지역사회 봉사활동은 그 동안 정치투쟁 중심으로 이루어졌다가 90년 3월 한마음 공동체를 창립하여 종합적인 농민운동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백운교회가 행하고 있는 지역사회운동은 86년부터 시작했는데 그 동안 부분적으로 진행되었던 농민운동(정치투쟁 중심)을 총체적인 농민운동으로 발전시켜 한마음 공동체 운동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정의운동은 구조적 모순과 싸워 나가는 정치투쟁 중심의 농민권리 운동이다. 여러가지 사례가 많이 있지만 그 중 한 사례로서 수세투쟁을 소개하고자 한다. 86년 당시 정부에서는 농지개량조합을 통해 한해동안 농민들에게 약 600억원의 수세를 거둬들였다.마치 봉이 김선달이 대동강 물을 막아놓고 물 장사를 하는 것처럼 하늘에서 내린 빗물, 땅에서 솟아난 물을 막아놓고 농민들에게 수세를 엄청나게 거둬들였다. 장성군에서는 1년에 약 6억원을 거둬 들였으며 본 교회가 자리잡고 있는 남면에서는 1년에 약 2억원을 거둬들였다. 남면 농민들이 1년수로작 쌀농사를 벌어들이는 수입이 총 20억정도 되었는데 이중 1/10을 수세로 빼앗긴 것이었다.그래서 이곳 백운교회를 중심으로 지역 농민들이 연대하여 수세거부투쟁위원회를 만들어 수세에 대한 부당성을 지적하여 깨닫게 하고 농민 스스로가 조직을 만들어 남면 수세거부대책위원회 활동을 하게 되었다. 힘없이 당하기만 하고 살았던 농민들이 처음에는 두려움과 피해의식 속에서 선뜻 나서지 않았으나 계속되는 교육과 홍보활동을 통해 점차 변화되기 시작했다.농민들은 계속해서 교회에 모여 수세에 대하여 학습하기 시작했고 마침내는 수세거부대책위원회라는 조직을 만들어 조직적으로 구조적 모순 즉, 정권과 싸워나가기 시작했다. 경찰의 감시, 관의 압력, 협박, 연행 등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농민들은 점차 발전하여 스스로 결성한 조직을 통해 커다란 성과를 얻게 되었다. 이 수세거부운동은 여러 지역 농민들에게 시작되어 농민회의 깃발아래 똘똘 뭉쳐 마침내는 1989년 관 주도의 농지개량조합이 직선제로 바뀌게 되었고 수세는 1/6로 줄어들어 농민들의 부담이 대폭적으로 줄게 되었다. 이 운동은 지역농민들의 경제적 이익을 얻는 것으로만 끝나지 아니하였고 농민 스스로가 조직할 수 있는 힘을 얻어내고, 구조적 모순과 싸워 이길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가지게 됨으로써 단순한 지역문제를 넘어서서 민족공동체 운동 정신으로 싹틀 수 있게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생명운동은 구조적 모순, 이기적 욕심에 의해 인간이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먹거리, 환경, 가치관 등이 너무 심하게 파괴되어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는 현실 속에서 모든 것을 생명의 존엄성에 비춰 생산하고 유통, 소비하는 운동을 말한다. 이 생명운동을 하게 된 구체적 배경은 다음과 같다.
천하보다도 귀한 생명을 유지하는 원동력이라 할 수 있는 먹거리가 농약공해로 가득차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특히 수입농축산물의 오염 실태는 우리의 상상을 초얼해서 엄청나게 많은 농약을 수확 후 보관과 운송중에 뿌려대고 있으며 또한 이러한 농산물에 의해 국내 농산물도 위기를 맞이하여 죽음의 농법인 화학농약농법으로 모든 농사가 진행중이다.농약중에 가장 ?서운 농약인 제초제가 땅 비율에 비해 전 세계에서 한국이 가장 많이 뿌려지고 있다는 것은 우리 농산물 역시 심각한 오염에 봉착해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러한 결과, 물론 다른 언인도 있겠지만 산부인과에서는 기형아 출산으로 인한 낙태가 갈수록 급증하고 있으며 암 사망률 역시 사망 원인의 25%를 넘어서고 있다는 통계가 보도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참먹거리를 생산하는 것이 시대적 사명임을 인식하고 무공해 농산물을 생산하여 생명을 살려낸다는 목적의식 속에서 발효퇴비를 공동으로 생산하여 각 농가의 땅을 살려내고 작목을 튼튼히 키워서 병충해를 막아내고 있으며 농약 대신 효소, 식초 등을 사용하고 직거래의 빠른 유통을 통해 방부제 등을 사용치 않은 깨끗한 참먹거리를 생산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힘쓰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농법은 무기화학농법이라고 볼 수 있다. 경제적 다수확생산이라는 이름아래 퇴비 대신 화학비료를 쓰고 이로 인하여 약하게 자란 작물에 생기는 병충해를 막아내기 위해 엄청난 농약을 쓰고 있다. 또한 제초제를 엄청나게 사용함으로 말미암아 미생물, 곤충, 땅 물 등 모든 생태계가 급속도로 무너지고 있다. 농사환경이 무너지면 농사는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 또한 이로 인한 환경의 파괴는 곧바로 인간의 죽음으로 직결된다. 따라서 한마음 공동체에서는 이와같은 죽음의 농법을 극복하고 생태계의 환경을 회복하기 위해 생명유기농법을 실시하고 있다.
값싼 수입농산물을 막아내는 방법은 현재로서는 없다. 현 정부는 생산원가를 줄여 수입농산물과 가격경쟁력에서 이겨야 한다고 하지만 실현 불가능한 일이다. 엄청나게 넓은 땅에서 완전자동화된 기계시설,정부의 보조, 튼튼한 농업기반 등으로 값싼 농산물을 생산해내는 수입농산물과는 가격경쟁에서 도저히 이길 수 없다. 오히려 수입농산물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안전성, 품질, 유통의 단순화에서 찾아야 한다. 수입농산물은 아무리 값이 쌀망정 안전성은 보장할 수 없다. 장기간 보존, 복잡한 수송과정 등으로 수확후에 뿌려지는 농약은 안전성을 절대로 지킬 수 없다. 이러한 사실이 밝혀지면서부터 대다수의 소비자들은 가격을 떠나서 안전한 농산물을 찾고 있다.
현재 대다수의 가정 가계부를 살펴보면 첫 순위가 교육비, 둘째가 식생활이다. 다른 부분을 좀 절약해서라도 안전한 먹거리를 먹고 싶어하는 것이 대다수 국민들의 요구라고 볼때 수입농산물을 막아내는 방법은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하는 길밖에 없다고 본다. 위와같은 목적으로 실행되는 생명운동은 생산농민, 유통실무자, 소비자 모두가 하나가 되어 한마음 공동체라는 조직안에서 힘차게 전개되고 있다.
현재 파괴되어가고 있는 농촌문제, 환경문제, 민족문제를 혼자의 힘으로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농민의 단결된 협동력, 도시소비자와 농촌 생산자들과의 공동체적 결속이 있어야만 농민문제,환경문제, 민족문제가 풀려지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공동체 운동을 시작하였다.87,88년 정권교체를 체험하면서 본교회가 1986년부터 시작한 정치투쟁의 한계성을 느끼고 앞으로의 운동은 정치투쟁을 포함한 총체적 삶의 운동으로 발전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 1990년 3월부터 공동체 운동을 하게 되었다.
이 공동체 운동은 17년이라는 기간 동안에 많은 성장을 해왔다. 그러나 어려움이 너무 많았고 앞으로도 더욱 많으리라고 예상된다. 특히 극단적으로 이기주의적인 자본사회의 생활이 몸에 배인 우리들이 공동체적 정신으로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실천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공동체적 생활양식을 실천하고 있다.
2. 한국농업의 현실과 미래(친환경농업과 그린투어리즘을 중심으로)
가. 친환경농산물의 생산과 확산과정
근래 들어 우리나라 농업생산에 있어서 큰 변화 중의 하나는 친환경농업의 본격적인 출현과 관심의 증대이다. 화학비료와 농약의 다투입에 의존해 왔던 기존 농업의 폐해가 나타나면서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대안농업으로 친환경농업이 정책의 전면에 나서게 된 것이다.
이러한 친환경농업은 어느 한 순간 갑자기 정책적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아니다. 그동안 수많은 농민 선각자들이 땀과 눈물을 흘리며 이뤄놓은 토대 위에서 대안농업으로 서광을 받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친환경농업은 1970년대 초반부터 산발적으로 농약을 치지 않고 농사를 지어오던 의식화된 농민들이 1976년에 바른(正) 농사(農)를 짓기 위한 모임을 결성하므로써 정농회가 출범했다. 이들은 이렇게 생산한 것을 소비자와의 직거래를 통해 출하하고 있으며, ‘풀무농장‘을 통해 공동체농장을 실현하기도 하였다. 직거래운동은 ‘정농생활협동조합’을 결성하여 소비자와의 관계성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1978년에는 ‘한국유기농업협회’가 출범했는 바, 이들은 주로 농민에 대한 교육, 연수활동에 치중하고 있으며, 부분적으로 회원이 생산한 농산물 판매도 하고 있다.
한국가톨릭농민회는 1970년대 후반부터 마을단위에서 부분적으로 ‘생명의 농업’을 실천하기 시작, 1980년대 말 농민운동 조직의 통합과 더불어 본격적으로 ‘생명공동체운동’으로 전환한다. 그 후 가농활동을 모태로 하여 ‘우리 밀 살리기 운동’(1991년), ‘우리 농촌 살리기 운동’(1994년), ‘우리 콩 지키기 운동’(1995년) 등을 다양하게 전개한다. 한국기독교농민회도 ‘전농’ 창립과 더불어 운동방향을 환경보전형 농업의 생산과 직거래운동으로 전환한다.
1983년에 창립된 ‘소비자생활협동조합중앙회’는 가맹한 지역생협들과 더불어 환경보전형농산물의 직거래 운동을 계속 확산시켜 오고 있다. ‘한살림운동’은 1986년에 시작,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회간의 올바른 관계 정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소비자와 생산자가 함께 참여한 새로운 조직적 틀 속에서 조직화된 소비자와 생산자간에 직거래 운동을 해 오면서 그 활동을 토대로 운동의 폭을 환경운동과 생활문화운동 등으로 넓혀가고 있다. 1986년에 창립된 ‘한국자연농업협회’도 농민들에 대한 교육을 주로 하고 있으며, 부분적으로 회원이 생산한 농산물의 유통을 추진하기도 한다.
광주지역을 중심으로 조직된 ‘광록회’는 1987년에 출범하면서, 환경보전형 농업뿐만 아니라 지역의 일반 환경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쳐, 높이 평가받고 있다. 1990년 창립된 ‘한마음공동체’도 친환경농업을 통하여 지역사회를 살리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해옴으로써 지역에서 인정받고 있다. 한마음공동체의 생산, 유통방식은 철저히 농민에 의한, 농민을 중심으로 하는 구조라는 점에서 독특성이 있다.
1993년에 창립된 ‘흙살림연구소’는 흙을 살리기 위한 미생물 농자재를 개발, 보급하는 사업을 통해 환경보전형 농업에 기여하고 있다.
‘신용협동조합중앙회’도 전의신협 등 일부 농촌신협에서 지역사회개발사업의 일환으로 환경보전형 농업을 추진하고 있고, 이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도시 신협과의 직거래 운동을 통해 소비하고 있다.
‘한국여성민우회’도 1989년에 ‘민우회생협’을 창립, 환경보전형 농산물의 공동구입활동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이 외에도 개신교는 농촌 목회자를 중심으로 하는 농민 선교를 위한 소규모 공동체 운동의 차원에서 환경보전형 농산물을 생산하고 있으며, 각 교단별로 농, 도 직거래운동을 통해서, 또는 ‘생활협동조합’의 틀을 통해서 유통하는 활동을 오랫동안 다양하게 전개해 오고 있다.
1984년에 야마기시즘 생활실현지로 출범한 야마기시즘 사회경향실현지는 채소와 환경보전형 양계방식을 독자적으로 개발하여 소비자에게 공급하고 있는 완전협업식의 공동체운동을 전개해 오고 있다.
1995년부터 팔당 상수원의 수질을 보전하기 위한 사업으로 서울시와 농협중앙회가 상수원 보호지역에 환경보전형 농업을 육성, 지원하는 사업을 추진하게 되자 지역농민들은 96년 ‘팔당 상수원 유기농업 운동본부’를 결성, 환경보전형 농업의 방식으로 생산된 농산물을 주로 직거래 방식으로 판매하고 있다.
94년에는 위에서 언급한 단체들이 중심이 되어 ‘환경보전형 농업생산‧소비단체 협의회’가 결성되었으며, 97년에는 ‘환경농업단체연합회’로 명칭을 변경, 조직적 구심력을 강화하여, 환경보전형 농업의 발전과 가맹단체의 활동을 지원하는 각종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94년 12월에는 정부도 직제를 개편, 환경농업과를 신설하고, 그동안 민간단체 중심으로 전개되어 오던 환경보전형 농업을 정부 정책으로 지원, 육성하는 제도를 마련했다. 이에 따라 농협중앙회도 환경농업과를 신설, 지역농협의 환경보전형 농업을 육성 지원하기에 이르렀으며, 안성군의 고삼농협을 비롯한 적극적 활동을 전개하는 우수사례가 창출되고 있다.
이러한 친환경농업의 확산은 소비자에게는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하고, 생산자에게는 안정된 생활을 보장하는 도농교류의 좋은 전례들을 남기고 있다. 그러나 친환경농업의 규모는 아직도 전국적인 차원에서 보면 미미하다.
표1) 친환경농산물 시장규모(가공농산물 제외)
년도 구분 |
1996 |
1998 |
1999 |
2000 |
2001 |
2002 |
2003 |
2004 |
2005 |
농가수(호) |
3,916 |
13,056 |
16,972 |
22,063 |
26,475 |
34,417 |
44,742 |
62,638 |
87,693 |
재배면적(ha) |
3,215 |
10,718 |
13,933 |
18,112 |
21,734 |
28,254 |
36,727 |
51,747 |
74,554 |
생산량(천톤) |
48 |
1160 |
208 |
27- |
324 |
421 |
547 |
793 |
1,189 |
시장규모(억원) |
348 |
1,160 |
1,508 |
1,960 |
2,352 |
3,057 |
3,974 |
5,961 |
8,941 |
* 친환경농업 농가수는 2000년을 기준으로 전체농가의 0.9%, 재배면적은 전체농경지의 0.6%이다.
* 생산량은 2005년까지 매년 30~40% 정도 증거할 것으로 전망됨
나. 친환경농산물의 유통 특징
친환경농산물 유통은 일반 농산물과는 약간은 다른 모습들을 지니고 있다.
우선 유통경로를 살펴보면, 친환경농산물을 생산하는 생산자들이 속한 단체(유기농협회, 정농회, 한살림 등)나 조직을 통해 출하하기도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타 판매 경로를 이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일반소매점에 납품하거나 판매장을 운영하는 등 직거래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그리고 출하를 먼저 의뢰해 오는 곳에 출하하거나 경영주가 직접 판촉을 통해 출하 혹은 판매하는 비중이 높고 또한 공동출하보다 개별적인 출하의 비중이 높아, 한마디로 친환경농산물 생산 경영주들은 생산과 출하에 있어서 매우 적극적이다. 그리고 친환경농산물은 일반농산물과 달리 생산자와 유통업체(조직)간의 일정한 계약에 의해 출하되는 경우가 많다. 친환경농산물이 지닌 품질차이가 차별화 상품으로 취급되기 때문이다. 일반 농산물의 경우 일정한 계약형태를 통한 출하가 많지 않음을 생각할 때, 친환경농산물의 출하는 거래쌍방의 상당 수준의 약속아래 이뤄지고 있다. 계약시기도 출하전에 이뤄지는 비율이 대체로 높다. 일정 거래처와 안정적인 거래를 많이 하고 있다. 성립된 계약은 비교적 잘 이행되고 있으며, 가끔은 계약이행 과정에서 천재지변이나 시장 상황의 예측치 못한 요인발생 등에 의해 문제가 발생되는 경우도 없지 않다. 그러나 그로 인한 거래선과의 마찰은 그리 크지 않다. 왜냐하면 친환경농산물 생산자와 유통업자 사이에 일정한 신뢰가 형성되어 있고, 상호협조만이 지속적인 거래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계약 내용은 거래선에 따라 약간씩 다르지만 대체로 출하 품목, 물량, 가격, 대금결제, 포장단위 등이 포함된다. 이외에도 반품처리 방법, 출하상표 등도 협의에 의해 결정하기도 한다.
친환경농산물의 가격은 일반 농산물에 비해 비교적 높은 가격에 출하되고 있다. 대부분의 친환경농산물은 출하시 일반농산물에 비해 10% 이상 높은 가격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는 달리 비교적 그 비율이 작기는 하지만, 일반농산물의 가격보다 낮게 출하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이는 기상이변 등의 요인으로 일반농산물의 시장가격이 폭등할 경우 상대적으로 계약에 의해 가격변동이 적은 친환경농산물의 가격이 일시적으로 낮거나 일반농산물과 동일하게 판매할 경우 친환경농산물이 가지는 외형적인 불리성에 기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친환경농산물의 출하형태는 대부분 box 단위 또는 소포장으로 출하되고 있다. 친환경농업의 발전이 빠른 채소류의 경우 소포장에 의한 출하 비율이 매우 높다. 과일류의 경우 일반농산물은 거의 대부분 박스 출하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친환경농업으로 생산된 과일의 상당부분은 소비자가 직접 구입할 수 있는 소포장으로 출하되고 있다. 이는 대부분의 친환경농산물이 일반농산물과 달리 직거래형태로 출하되고, 거래가 일정계약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유통과정에서 재포장 없이 곧바로 소비자들에 전달되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다. 친환경농산물 시장환경
친환경농산물 시장환경이 점차적으로 변화되는 양상을 띠고 있다. 우선 친환경농산물 시장을 생각하면 소비자들의 건강에 대한 관심과 환경의식의 고취, 소득수준의 증대, 생산과 유통에 대한 정부지원의 강화 등으로 시장이 급성장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가지고 있다. 친환경농산물 시장의 확대는 당연히 유통의 다변화를 유도한다. 그동안의 생활협동조합 및 생산자직거래 중심의 시장에서 백화점, 할인점 등 일반 유통업체로 판매경로가 확대되고 있고, 식품제조회사에서 유기농 가공식품을 개발하고 판매를 확대하고 있는 등 친환경농산물의 시장의 변화의 폭은 상상외로 크다.
친환경농산물 시장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은 공급자중심의 시장에서 소비자 중심의 시장으로 변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의 공급자들은 철학과 생명농업에 대한 중요성에 대한 공감으로 인해 친환경농업을 해왔지만, 이제는 공급자들의 수와 폭이 넓어져야 하고, 넓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동안의 생산, 공급의 방식에 변화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이는 곧 친환경농산물의 유통에 대한 주도권이 생산자가 아닌 소비자에게로 넘어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비자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보다 값싸고 질 좋은 상품에 대한 구매를 원하게 될 것이고, 동종의 제품에 대한 가격경쟁력을 중시하게 될 것이다. 이는 생협의 물품위원회를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그간의 생산 공급방식은 생산자와 소비자의 신뢰관계가 우선적인 덕목이었으나, 이제는 안정성에 대한 객관적인 기준(품질인증)이 제품을 고르는 기준이 될 것이므로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구매의 폭이 넓어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상품의 품질과 규격에 대한 표준화 요구가 거세질 것이다.
생산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간 다품종소량생산방식에서 품목별로 전문화, 규모화하는 생산단지가 생겨날 것이다. 대형 유통업체의 거래조건을 맞추기 위해서는 가격, 품질, 생산의 안전성 면에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경쟁력있는 품목별로 전문화하고 지역별로 단지를 조성해 규모를 확대해가는 일들이 늘어날 것이다. 아울러 친환경농산물의 국제교역이 증가할 것이다. 특히 유기농가공식품의 원료 농산물은 그 수입량이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리고 쉽게 예견할 수 있는 것처럼 인터넷을 통한 전자상거래의 확산으로 인해 친환경농산물의 유통방식이 변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생산자와 생산과정에 대한 풍부한 정보제공을 통해 소비자의 신뢰를 얻는 방식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라. 농업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또 하나의 모색 - 그린투어리즘
농촌에서 선택하고 취할 수 있는 생존전략은 농산물의 생산과 유통을 포함하는 농업의 다면적 기능의 활용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농업의 다면적 기능이란 농산물 공급뿐만 아니라 국토보전, 수원 함양, 자연환경의 보전, 양호한 경관 형성, 문화 전승 등 농촌의 다양한 기능을 말한다. 즉 농업의 기능을 단순히 농산물 공급에 한정하지 않고, 쾌적한 자연환경 보존과 문화적 가치 전승 등 농촌의 다양한 가치를 유지, 보존하는 데에 두는 것이다.
이러한 농업의 다면적 기능을 현실적으로 수용한 것이 그린 투어리즘(녹색관광)이다. 그린 투어리즘이란 원래 나무가 푸르게 우거진 전원에서 즐기는 관광을 말하며, 따라서 주로 농촌지역과 농가를 목적지로 하는 관광을 의미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농촌의 쾌적한 자연환경 속에서 전통문화와 농촌생활을 체험하고 익히며, 전통음식을 즐긴다는 것이다. 해안관광을 blue tourism, 눈 덮인 산악관광을 white tourism, 도시관광을 light tourism이라고 부르는 데 반해 푸른 녹음 속에서 전원을 즐긴다는 의미에서 그린 투어리즘이라고 불러왔다.
그린 투어리즘은 세 가지 측면에서 농촌의 현실에서 수용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첫째, 관광 목적지로서 농촌의 잠재력을 활용하는 것이다. 관광 행태가 점차적으로 보는 관광에서 직접 참여하고 체험하는 관광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사실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농촌은 이러한 참여와 체험이 가능한 공간이다. 그러므로 도시인들에게 준비된 농촌은 관광 목적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둘째 농촌의 지속가능한 개발전략이기 때문이다. 그린 투어리즘은 대규모 외부자본이 아닌 주민들 자신이 주체가 되기 때문에 소득의 외부유출을 최소화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그린 투어리즘을 농촌지역 활성화의 새로운 수단으로서 파악되어야 한다.
그린 투어리즘이 가져다주는 직접적인 효과로는 첫째, 친환경적인 관광을 통한 자연환경 보존 효과를 들 수 있다. 지금까지의 관광이 자연을 파괴하고 오염시켜온 것과는 달리 그린 투어리즘은 잘 보존된 자연경관을 즐기고, 그 자연환경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자연환경 보존에 도움이 될 것이다. 두번째 효과는 지역사회의 활성화이다. 무엇보다도 수익 증대로 인한 지역경제의 활성화를 통해 지역 전체가 활발하게 움직이는 효과를 가져오게 된다. 또한 지역 주민들은 지역사회가 지니고 있는 생태적, 환경적, 문화적 가치를 도시인들에게 제공해 준다는 자긍심을 갖게 되어 지역사회가 자신감에 가득차게 된다. 이같은 소득 향상과 자신감 고취로 인하여 지역사회의 삶의 질이 향상되어 갈 수 있게 된다. 세번째 효과로는 도시와 지역사회의 교류를 통한 상호 거리감 해소를 들 수 있다.
그러나 그린 투어리즘을 단순히 지역의 소득향상과 활성화의 한 수단으로서만 받아들이는 것은 그린 투어리즘의 본질에도 어긋나며 과거 상업주의적 관광의 행태를 답습하는 것밖에는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자연환경을 보존하고, 지역사회의 가치를 확인하며, 도시민과의 문화적 교류를 활발히 한다는 데에 주안점을 두고 그 부수적인 효과로 소득향상과 경제활성화를 꾀할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그린 투어리즘이 자리잡게 될 것이다.
1) 농촌을 농촌답게
우리가 사는 농촌이 앞으로 누려야 할 삶의 가치들을 품고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현실적으로 많은 문제점들을 안고 있습니다.
우선적으로 농촌인구의 감소와 고령화의 문제입니다. 우리 농촌 어느 곳을 가더라도 젊은 일꾼들이 없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보기에는 농촌소득이 적고, 자녀들의 교육문제가 심각하며, 문화적인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데서 오는 시대적 흐름에 뒤떨어진다는 생각, 그리고 주거문화의 불편함 때문에 농촌을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동시에 나름대로 생각을 갖고 생태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려는 사람들과 생의 방법으로 귀농을 선택한 사람들은 농촌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 또한 현실입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떠나는 사람들이 들어오는 사람들보다 많습니다. 농촌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는 구조로 변화시켜나가는 것이 우리의 과제입니다.
둘째로, 농촌 소득을 향상시킬 뚜렷한 대안이 없다는 것입니다. 값싼 농산물의 수입과 쌀의 전면 개방은 우리 농촌의 경제 기반을 완전히 무너뜨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위협들 속에서 농촌에서 살아가는 농민들이 경제적으로 더 핍절하게 될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부채는 자꾸 늘어가고, 경제적인 수입은 점차 줄어드는 형편에서 사람들은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농촌을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는 농촌으로 만들려면 우리의 삶의 근거가 되는 식의주의 문제와 이 식의주의 문제에 앞서 우리의 가치관을 점검하고 바른 가치를 갖도록 하는 교육의 문제, 그리고 교육이 현실화되어지는 문화의 문제를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① 식 - 안전한 먹거리의 생산
농촌이 가진 자원 중에 제일 우선이 먹거리입니다. 이 자원을 충분히 활용하여 소득을 증대시키고 사람을 불러들이기 위해서는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해내야 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값싼 농산물의 수입과 쌀의 전면 개방은 농가소득을 더욱 악화시킬 것입니다. 가격 경쟁력에서 상대가 되지 않을뿐더러 가공처리 및 포장이라는 측면에서 우리보다 월등한 기술을 가진 물건들이 들어온다면 소비자들의 시선은 당연히 그 쪽으로 쏠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수입 농산물들이 지닌 취약점이 화학살상농법에 의해 재배 생산된 것이고, 장거리 운송을 위해 여러 가지 화학 약품처리가 이루어졌으며, 색깔이나 향기를 잃지 않게 하기 위해 착색제, 향신제등이 첨가된 멀거리라는 점입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조금은 힘들더라도 화학비료나 제초제, 농약의 사용을 자제하거나, 아예 사용하지 않는 저농약, 무농약, 유기농산물을 생산해내는 일입니다.
② 의 - 천연염색을 활용한 의복 문화의 개선
농촌이 지닌 자원들을 바탕으로 하여 생산되어지고 상품화되어지면서 사람들의 건강에도 도움이 되는 옷이 있다면 도시인들의 눈길을 끌 수 있을 것이다. 천연염색을 한 옷은 착색제나 화학적인 처리를 통해 물들인 옷보다도 통기성, 흡습성, 향균성이 뛰어나다. 천연 염료의 재료는 우리 농촌의 들과 산에 널려있는 것들이다. 황토, 쑥, 치자, 오배자, 홍화, 감, 재 등 수많은 자연의 소산물들이 천연염색의 재료가 될 수 있다. 의복문화가 사람들의 삶을 더욱 더 자연친화적인 모습으로 변화시킬 수 있고 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는 것이라면 장기적인 전망을 가지고 투자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③ 주 - 향토색 짙은 주거문화
농촌이 도시인들을 불러들이기 위해서 도시와 같은 형태의 구조를 벗어나서 다른 것들을 체험하고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자랑스러운 주택문화가 있다. 그것은 다름아닌 흙집과 구둘장이다. 흙집은 시멘트로 만들어진 집들과는 달리 통기성이 좋으며, 흙 자체가 지닌 장점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건강에 도움이 된다. 이러한 집들이 농촌에 들어선다면 도시인들에게는 넉넉한 고향의 향취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이고, 농민들에게는 건강과 농외소득을 보장하는 공간이 될 것이다.
도시인들의 머리에 장성의 이미지를 각인시킬 수 있는 좋은 방안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장성을 찾는 사람들에게 황토흙집으로 지어진 음식점, 숙소, 놀이터, 구판장, 촌락 등이 보여지고 그들이 직접 찾아가 머무를 수 있는 민박들이 제공된다면 도시인들이 장성을 찾는 횟수가 점차 늘어나게 될 것이다.
④ 평생교육의 장으로서의 농촌
농촌은 인간에게 있어 참으로 필요한 가치들이 무엇인가를 생각할 수 있는 기회들을 제공한다. 무엇보다도 인간이 더불어 살아가야 할 자연경관이 사람들로 하여금 많은 부분을 기억하게 하고, 삶을 정비하게 하는 요소가 될 것이다. 우리는 이런 면들을 충분히 활용하여 도시의 어린이, 청소년, 장년, 노인들에게 참다운 가치와 삶의 모습들을 보여줄 수 있는 교육의 장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 구체적인 모습이 체험학습장이라고 할 수 있다. 도시인들이 농사철에 모여와서 농사일을 돕는 경험에서부터, 농촌의 흙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도예, 천연염색, 흙집 짓기 등에 참여, 자연환경의 혜택을 맘껏 누릴 수 있는 삼림욕, 황토방 체험 등 수 많은 체험들이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면 도시인들의 발길을 머무르게 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현재 한마음공동체는 유치원을 통해 지역의 아이들과 도시에 있는 생태적 환경에 관심을 가진 이들의 자녀들을 한데 모아 교육하고 있다. 그리고 자연체험학교를 통해서 여러 가지 문화체험이 이루어질 수 있는 공간들을 제공하고 있다. 우리 공동체는 앞으로 보다 더 적극적으로 교육문제에 관심을 갖고 지역의 아이들과 도시의 뜻있는 사람들의 자녀들을 교육하는 대안교육의 장을 만들고자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구체화해갈 것이다.
⑤ 다양한 문화체험 - 축제의 일상화
공생의 삶과 살림의 삶으로부터 형상화되어 나오는 문화는 축제이다. 농촌은 예전부터 이 축제가 일상화되어온 공간이다. 농촌에는 세시풍속이라고 해서 굳어진 것들 외에도 다양한 문화가 현존한다. 24절기에 해당하는 시기에 펼쳐지는 여러 가지 행사와 인간의 생사화복에 연결된 많은 요소들이 인간의 삶을 축제적으로 바꿔간다. 축제에 참여하고, 축제가 주는 삶의 활력을 경험한 이들은 다시금 축제를 찾게 된다. 그러나 이 축제가 일상의 삶과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면 일회성으로 그쳐버릴 것이고, 실제적으로 농민들의 소득과는 무관한 것이 되어버릴 것이다. 한마음공동체와 백운교회에서는 지난 15년간 도시소비자와 지역농민들을 엮어내는 추수감사축제를 시행하고 있으며, 지역민들의 화합을 위해 정월 대보름날 지신밟기 행사를 행하고 있다. 이런 행사들 외에 여러 가지 축제행사를 기획하고, 농민들의 요구와 바램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⑥ 농촌문화체험관광
우리와 같은 형태의 농촌 경제를 가진 일본의 경우, 와세다 대학에 농촌경제를 활성화시킬 방안을 제시하도록 용역을 주었는데, 그들의 연구 조사에 따르면 농촌을 살려내기 위해서는 농산물의 생산과 판매 위주가 아닌, 농촌의 여러 가지 자원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려 농림성에 보고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제까지의 관광이 보고, 먹고, 즐기는 차원의 관광이었다면, 앞으로의 관광은 보고, 먹고, 즐기는 것과 더불어 실제적 삶을 접하고 거기에서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고, 인간의 삶의 모습을 통해 정을 느끼는 쪽으로 흘러간다고 한다. 이러한 관광의 진행과정은 필연적으로 농촌문화체험관광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농촌문화체험관광은 농촌의 관광자원화를 통해 농민들이 직접적으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구조와 도시인들이 농촌지역의 삶과 문화를 직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방안이 함께 모색되어야 한다.
2) 세계 속의 농촌으로
외국 관광객들의 발길을 멈추어 서게 할 수 있는 것은 자연풍광이나 놀이시설이 아니다. 한국의 정서를 느끼고 한국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접할 수 있는 공간을 원한다. 한국민의 의식주와 문화, 교육의 참모습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원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접한 의식주는 다른 나라에서 접하는 것과 다른 것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다시 찾게 되는 근거가 된다.
농촌과 농업의 미래를 준비하는 일은 지난한 일이다. 규모화와 선진화, 혹은 첨단화를 통해서 농업의 미래가 담보되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농촌과 농업의 미래는 사람에게 달려있다. 농민이 없이는 농촌과 농업은 의미가 없다. 농민이 주체가 되어 무언가 변화를 모색하고 실천을 통해 새로운 장을 열어가야 한다. 이 엄연한 현실 앞에서 농민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개인의 생존만이 아닌 민족의 생존, 인류의 생존을 담보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농민들 스스로 자신의 삶에 대해 운명을 개척하는 자세로 임해야 할 것이다. 미래는 가능성의 영역이다. 우리들에게 주어진 가능성의 영역을 현실로 만들어가자.
3. 생명살리기 운동과 교회
기독교의 핵심적 사역 가운데 하나가 생명살리기 사역이다. 이 사역은 인간의 영혼과 육체의 구원과 직결되는 일이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생명살리기에 관한 관심이 커져가고 있고, 실제로 그것과 관련된 다양한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생명살리기 운동의 관건은 실천력의 문제이다. 아무리 좋은 말들을 동원한다고 하더라도 현장에서 실천되지 않으면 허공을 치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실천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아주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면을 건드리지 않으면 안된다. 명분과 업적만을 추구하는 접근방식은 생명을 살리는 일과는 무관한 것이다.
교회 현장을 살펴보자. 개교회의 생명살리기 운동에 대한 참여의지는 담임 목회자의 적극성에 달려있습니다. 목회자의 적극성은 결국 설교를 통해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설교는 대단히 민감한 부분이라서 쉽게 지적하지 못해온 것이 사실이지만 생명살리기의 관점에서 몇 가지를 짚어보자.
우선 지금까지의 설교가 생명의 가장 근본이 되는 식의주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었던 것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 교회 안에서 성장하면서 내가 들어온 설교는 대부분 교리나 성경해석에 매여 있어서 실제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먹거리, 입을 거리, 잠자는 것에 대해서 전혀 언급하지 않는 설교가 대부분이었다. 교회를 다니면서 설교시간에 공기를 맑게 하기 위하여, 맑은 물을 먹기 위하여, 안전한 먹거리를 먹기 위하여 구체적인 접근은 어떻게 해야하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입장을 세계시민들에게 어떻게 제시해야하는가를 들을 기회가 거의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 의미에서 생명살리기에 대한 교회의 입장은 구체적이고 일상적이며 실제적인 이야기들이 별로 없었다. 교회에서 우리의 영적인 성숙을 위해, 영혼의 성장을 위해 설교를 하고 들으면서도 실제 생활에서 여지없이 생명을 살리는 일과 무관하게 살아가는 이유는 설교가 실제생활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것이 단지 말로만 끝나버리는 경우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목회자가 생명에 관한 언급을 하면서 생명은 원어로 무슨 단어이고, 무슨 뜻을 가졌고, 그러므로 그 뜻에 합당하게 살아야 한다고 했다면 그것 자체로서 이미 완결된 설교가 될 것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일상의 삶에서 어떻게 실천하면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설교를 통하여 절제하는 삶에 대해 전하고 나서 함께 나누는 식탁에서 과식을 하게 된다면 그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강한 역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셈이다. 우리가 알다시피 설교가 힘을 얻으려면 실천이 따르는 것이 되어야 한다.
또 한가지 생명살리기 운동 차원에서 설교를 이야기한다면 설교가 목회자의 삶과 직결되는 것이어야 한다. 삶과 설교가 따로 논다면 그것은 힘이 실리지 않는 설교일 뿐이다. 일주일의 삶이 주일날 설교가 되어야 한다. 생명을 살리기 위한 평상시의 노력들이 설교로 이어져야 비로소 생명을 살리는 설교가 되어진다. 생명살리기 운동의 성패는 목회자들에게 달려있다. 목회자의 외침과 실천이 하나가 될 때 생명이 되살아나는 소리들이 곳곳에서 들리게 될 것이다. 생명을 살리는 일은 이론이 아닌 실천이다.
생명살리기 운동에는 구체적인 일상 속에서 접하는 것들을 실천하는 것과 전지구적 차원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일이 함께 포함된다. 생명살리기 운동에 참여하는 이들은 물을 아끼고,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동물을 보호하고 하는 차원의 문제들과 함께 전지구적인 환경파괴의 문제라든지, 오존층의 파괴, 사회적 빈부격차의 문제, 기아와 전쟁의 문제, 종교간의 갈등과 화해에 대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관심의 폭을 넓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을 보면 애완견 한 마리가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온갖 정성과 열의를 쏟아 치료하고,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눈물 흘리며 떠나보면서도, 강력한 무기를 앞세워 약소국가를 위협하고, 침략하는 세력들이 저지른 만행과 전쟁으로 인한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과 고통과 기아의 문제에 대해서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생명살리기 운동은 미시적 관점과 거시적 관점이 융화되어야 한다. 삶의 소소한 부분을 생명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실천하는 일과 전지구적 차원에서 반생명적인 세력들을 넘어서는 대안적 사고와 실천을 하는 것을 포함한다.
기독인들은 당연하게 생명살리기 운동의 실천가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 바로 우리에게 그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신앙인으로서 마땅히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한다면, 생명을 살리는 일에 앞장 설 수밖에 없다고 여겨진다. 생명살리기는 운동이 아니라 당위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히 행해야 하는 사역이다.